과학+예술 10년 후 v.3
면접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전시를 다녀왔다. 얼마전 인사동에 들렸을 때 시간이 늦어 관람하지 못했던 robot전. 인사아트센터는 2년전 니모단과 포토에세이전을 본 이후로 두번째 방문이다.
과학+예술 10년 후 v.3-로봇,백남준에서 휴보까지(전시소개)

로봇을 화두로 풀어보는 과학과 예술 그리고 산업의 만남
카이스트와 가나아트갤러리가 공동주최하는 본 전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디어아티스트이자 탁월한 상상력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백남준의 작품과 국내 과학교육의 메카인 카이스트에서 제작한 국내최초의 인간형로봇인 휴보로 상징되는 미술계와 과학계, 그리고 산업계에서 30여 개 팀 100명의 인원이 참여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로 만나기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지는 예술계와 과학계 산업계가 함께 로봇이라는 주제를 풀어나감으로서 조화로운 만남과 발전적 미래를 꿈꾸어본다.


1층에서 4층까지는 작품전시, 5층은 교육프로그램, 6층은 휴게 공간으로 나는 4층까지만 둘러보고 나왔다. 분위기는 꽤 차분했음. 각 층의 전시물들은 인간과 기계의 상관, 정체성 해석에 따라 일정 주제를 가지고 나뉘어 있었고 큐레이터언니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줘서 작품이해가 쉬웠다.

인간과 로봇하면 떠올릴 수 있는 어떤 이야기.
인간의 입장에서 또는 로봇의 입장에서 겪는 정체성갈등.
일방의 의존, 정복과 잠식.
조화.
저마다의 해석이 담긴 다양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낸시랭이 참여한줄은 모르고 갔는데 제1전시에서 낯익은 터부요기니 시리즈를 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시리즈들 중에서 아주 작은 칩의 형태를 한 작품도 있었다.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수십개의 터부요기니를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굳이 들여다본다는 행위의 중요성은 잘 모르겠지만 과학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것에서 의의가 있는 듯 싶다.
백남준의 Phiber Optik 역시 임팩트가 굉장했다! 급속도로 발전해나가는 전자문명과 인간본연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것인지. 그 비판적인 의견으로,

남지-Portable Assembly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기계에 접속해 얇은 관을 통해서 그들의 정신적, 신체적 분비를 공유한다. 결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는 기능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우리의 인간적인 교류가 메마르고 메말라서 결국엔 이런 기계를 통해야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제2전시에서는 인간이 되고픈 로봇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간처럼 음악에 반응하고, 붓을들고 퍼포먼스를 하는 로봇의 영상들... 로봇과학이 꾸준히 발달하면 정말 로봇 스스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그런 시대가 올까? 그렇다면 그들은 음악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감성적 예술행위를 혼란의 해답으로 삼을까 아니면 그것을 통해 더욱더 괴로워하고 고뇌할까. 우리나라 최초 인간형 로봇인 휴보의 실물과 영상을 보았다. 영상속에서 자유자재로 균형을 잡고 움직이는 로봇동작의 자연스러움이 인간을 무척 닮았다고 느꼈다. 진정 머지않아... 끊임없이 인간다운 로봇을 추구하는 인간은 결국 인간을 만들어내게 될런지.

주목할 것은 공존이다.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고안된 신기하고 서정적인 기계발명품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인 이것.

노진아-나는 l’hommelette 입니다.

두개의 방이 있고 각각의 방에 사용자가 들어가면 로봇이 두 사용자를 이어 대화를 성립시킨다. 단순히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것과는 달랐다. 내가 '성미'로 로그인을 하고 '만나서 반가워'라고 타이핑하자, 로봇이 말하길(그때 옆방에는 사용자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로봇과 직접 대화할 수 있었다)
'성미씨, 나도 반가워요. 당신을 나의 두뇌로 초대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이쪽방에 사람이 있었다면 당신이 나의 자아가 되어서 그와 대화를 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네요' 라고 대답했다.
내가 타이핑을 함으로써 로봇의 자아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 로봇의 자아로서 다른 사용자와 대화를 하고, 로봇의 시야에서 보는 것. 이것은 인간이 로봇으로서, 로봇이 인간으로서 자아를 나누는 진짜 '공존'인 것일까? 그런데 내가 느낀것은 눈 앞에서 기묘한 영상을 뿜어대는 영상스크린과 이 맥빠지고 기계적인 로봇 목소리의 섬뜩함이었다. 나는 정말 이 작품에서 미래 로봇문명에서의 비인간적 창조에 대한 기괴함을 엄청나게 느꼈다. 우리 자신이 로봇으로서 상대를 만나게 되는 미래와, 자아조차도 인간에게 내어주는 로봇의 미래. 커다란 머리뒤에 갓 알에서 깨어난 사람의 형체를 한 로봇은 내가 다가가자 내 쪽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뭐라뭐라 말을 했는데, 정말 생명이 주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욱 오믈렛의 이 껍데기같은 기능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내가 정말 그의 자아가 되어서 옆방의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면 그 대화는 '오믈렛이 가진 대화'가 될 수 있는걸까? 난 아니라고 보는데.

대부분의 3전시장 작품들이 그렇듯, 공존 속에서 인간은 지배자의 역할이 뚜렷했다. 분명 교류하고 있지만 인간에 의해 창조된 만큼 인간에게 헌신해야 할, 그들에게는 생명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과연 로봇의 감성을 존중하며 공생할 수 있게 될까? 전시는 이 굉장히 미래적인 질문을 현실속에서 바라보길 권한다.
by 아리마 | 2006/01/20 08:39 | 그냥 감상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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